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 (문단 편집) === 현대 국제정세의 확립 === 모호하게 전쟁이 종결되어 불안정한 질서가 유지되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간기]]와는 달리 제2차 세계 대전은 비교적 선악 구도가 명확했고,[* 물론 표면적으로는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자유+공산 진영과 파시즘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1차 대전보다 선악 구도가 명확했다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데, 적어도 연합국들은 나치 독일처럼 [[홀로코스트|'관료제를 동원한 공장식 학살로 특정 인종을 지상에서 멸절한다.']]라는 전무후무한 구상을 하진 않았고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처럼 점령지 내 비무장 민간인들을 상대로 수만~수십만 단위의 무차별 학살과 강간을 자행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주요 추축국 중 가장 전쟁범죄가 적었던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 중 가장 불량했던 소련보다 전쟁범죄가 적었으나 여전히 소련 외 연합국에 비해서는 전쟁범죄가 잦았고 죄질이 나빴다. 게다가 그 외 추축국들이었던 헝가리, 루마니아 등도 상당히 잔악한 전쟁범죄를 많이 자행했다. 따라서 2차 대전은 '상대선 vs 절대악'이라는 보다 명확한 선악 구도를 보인다. 인터넷 상에서는 과거 연합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악행을 들어 '그놈이 그놈'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하나,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양비론적 관점은 부적절하다. 가령 영국의 식민통치가 2-300년간 수백만을 죽였다면, 독일은 10여년간 유대인 600만과 슬라브인 수백만-천만 가량을 죽였다. 학살은 용인돼서는 안 되는 것이긴 하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나치가 더 심각하다.][* 이를 두고 당시 연합국 최고사령관을 역임한 아이젠하워는 [[https://www.eisenhowerlibrary.gov/eisenhowers/quotes|"역사상으로 이번처럼 독재/억압 세력과 자유/인권 세력이 정면으로 대결했던 전쟁은 없었다"]]고 평했다.]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에선 어쨌거나 [[동맹국]]이 전멸하면서 [[협상국]]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지만, 삼국협상의 한 축이었던 [[러시아 제국]]은 공산주의에 휩쓸려([[러시아 혁명]])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전쟁 중 탈주했고]] 분명 전쟁에서 패배했던 [[오스만 제국]]이 갑자기 [[튀르키예 독립전쟁|전쟁을 벌여]] 이기는([[로잔 조약]]) 등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했다. 또한 전후 각국의 이해관계와 갑작스럽게 폭발한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며 결국 20년 만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전후의 역사와 세계 질서가 완전히 결정되었다. 특히 2차 대전으로 인한 가장 중요한 국제적 영향은 세계 패권의 중심이 기존의 [[서유럽]]에서 새롭게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 무렵까지 세계의 중심이었던 [[대영제국]]은 바로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이는 전쟁 중 유럽 대륙 전역이 히틀러의 수하에 떨어지며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하자, 영국의 경제가 피폐해지면서 식민지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은 것이 한 원인이었다. 1941년 [[미국]]이 참전한 이후 전장의 주도권마저 [[미군]]에 넘겨주었다. 특히 1941년 미국의 대추축국 선전 포고 전까지는 영국이 단독으로 대독일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경제적 타격이 컸다. 특히 1940년에는 수도 [[런던]]이 대공습을 당하거나 영국의 생명줄인 해상 보급로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지는 등 [[인도 제국|인도]]라는 거대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생존조차 힘들었을 정도로 휘청였으며, 미국이 참전하면서 숨을 돌렸으나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전쟁을 이끌면서 영국은 미국의 보조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게끔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미국이 참전을 결정했을 때 영국에 상당히 무리가 있는 요구를 했었음에도 처칠은 이를 수용했다. 루즈벨트 재선 후, 영국의 지원 요청에 대해 미국이 했던 제안(미국측의 영국 정부 회계 감사, 금괴 요구, 영국 국영기업 소유권을 헐값에 미국으로 이전)만 봐도 2차 대전 당시의 영국과 미국의 관계와 영국의 처참한 입장을 한눈에 보여준다. 결국 2차 대전을 끝으로 [[대영제국]]의 패권은 무너졌으며, [[서유럽]]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본격화되었다. 미국과 소련 이 두 나라는 2차 대전을 주도한 양대 세력이었다. 소련은 [[독소전쟁]] 때문에 자국 국민 40%가 동원되어 나치 독일에 대항하여 14%의 인구가 희생되는 처참한 사투를 벌였다. 이로 인해 훗날 베를린 공방전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으며 서방 세계에 대해 자신들의 지분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고 미국 역시 [[태평양 전쟁]]에서 홀로 일본 제국을 상대하며 제국을 패망시켰고 유럽의 서부전선에서도 노르망디 작전을 성공시키고 프랑스를 해방시키며 전쟁에서 거대한 지분을 가지게 된다. 다만 미국은 자신만이 핵무기를 가지고 압도적 초강대국이 될 거라 생각하고 소련을 만만히 봤지만, 소련은 얼마 안 가 핵무기를 개발해냄으로서 양대 초강대국으로 미국에게 뒤떨어지지 않음을 명백하게 드러내었다. [[냉전]] 체제가 시작되면서 미국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제1세계|자유주의 진영]]에, 소련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제2세계|공산주의 진영]]에 각각 여러 국가들을 가담시키며 쌍방 간 세력 경쟁을 본격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소련은 지구를 넘어 [[우주 경쟁|우주에서까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극초강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패권 다툼을 벌였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다른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도 막대한 전쟁 피해와 두 초강대국의 압박으로 인해 식민지를 청산하고 물러섰으며[* 일례로 [[프랑스]]는 전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식민지에 미련이 있어 '[[프랑스 식민제국]] 회복'이라는 미명 하에 이전 식민지였던 [[베트남]]과 [[알제리]]를 계속 통치하려 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목숨 걸었던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과]] [[알제리 독립 전쟁|알제리에서]] 모두 패배했고 뒤이어 1960년대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프랑스 식민지가 독립해 나가며 결국 프랑스도 탈식민지화의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비슷하게 [[네덜란드]] 역시 [[인도네시아]]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으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외교적으로 패배하며 탈식민지화의 길을 걸었다.] 이에 따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과거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였던 수많은 독립 국가들이 새로 탄생하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카이로 선언]]에서 명시된 대로 [[광복]]을 맞이했다. 즉, 이미 1차 대전 이후 쇠퇴하던 [[제국주의]] 풍조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완전히 막을 내렸다. 간혹 대리전의 형태로 전쟁이 발생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과거 [[국제연맹]]의 문제점과 과오를 되새겨 이와 같은 참혹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세계적 통합과 협력 및 평화를 위해 [[유엔]]이라는 새로운 국제기구를 창설하였고 이는 지금도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